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오스발트 폴 (문단 편집) == [[제2차 세계 대전]] == || [[파일:폴과 장군들.jpg|width=100%]] || || 폴과 고위장교들[* 왼쪽부터 [[리하르트 글뤽스]] [[슈츠슈타펠|SS]][[중장]], [[아우구스트 프랑크]] [[슈츠슈타펠|SS]][[대장(계급)|대장]], 오스발트 폴 [[슈츠슈타펠|SS]][[대장(계급)|대장]], [[게오르크 뢰르너]] [[슈츠슈타펠|SS]][[중장]], [[한스 캄러]] [[슈츠슈타펠|SS]][[대장(계급)|대장]]이다.] || [[제2차 세계 대전]]이 벌어지던 [[1942년]] [[2월 1일]]에 <예산 및 건설본부>와 <경제 및 행정본부>가 통합되면서 <경제관리본부>로 만들어지자 폴은 그 본부장에 취임했다. [[1942년]] [[3월 16일]]에 강제수용소 감독부대가 SS 작전본부 배속에서 폴의 WVHA로 배속되면서 이후 강제수용소는 WVHA의 D국이 되어 정식으로 폴의 산하기관이 되었다. 이것은 강제수용소의 관리 및 총력전 체제구축을 위한 노동력의 공급원 감시라는 면에서 중요시되었다. 폴 이하 친위대 경제반은 강제수용소 인력과 유대인 인력을 중시하여 사망률을 낮추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노동력이 없는 유대인과 수용인은 절멸대상이었다. 폴의 관리하에 있던 아우슈비츠 및 마이다네크 강제수용소엔 가스실이 설치되어 노동력이 없는 자를 살해했다. 노동력이 있는 자는 별도의 수용소에 수감되어 철저하게 군수산업에 동원되었는데 폴은 강제수용소의 유대인들로부터 빼앗은 돈과 시계, 보석, 심지어 금니까지 모조리 뽑아 독일 제국은행에 예치했다. [[1942년]] [[4월 20일]]에 폴은 친위대 대장으로 승진했는데 [[12월]]엔 첫 아내와 이혼한 후 IG 파르벤 사의 하부기업인 헤키스트 사의 창설자 미망인인 엘레오노레 폰 브뤼닝과 재혼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